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 출간한 위서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대략 '환인, 환웅, 단군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엽기적인 사실은, 정작 이 괴문헌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대가 환인과 단군은 아득히 초월한 채 위로는 세계와 인류의 창조로부터 아래로는 고려시대의 위화도 회군 전야에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후 1986년에 환단고기를 일본에서 국내에 역수입한 임승국이 "환인은 우리말 하느님을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고, 따라서 환이란 하늘의 준말인 한이다"라는 주석을 단 이래 이 괴문헌의 이름을 '한단고기'라고 읽는 경향이 생겨났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임승국의 주장은 그 어떠한 학문적 근거도 없는 견강부회다.안타깝게도 환단고기 자체가 근거가 없다
한자의 옛 독음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운서들을 보아야 하는데, 당운(732)과 광운(1008) 모두 桓의 독음이 호관절(胡官切)임을 분명히 명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절법이라 하여 '호'의 초성 'ㅎ'과 '관'의 중, 종성 'ㅘㄴ'을 결합하여 '환'이라는 음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참고로 이 운서들에는 환(丸)도 똑같이 호관절(胡官切)이라 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당운보다 먼저 만들어진 절운(601)과 옥편(543)에서 각각 桓의 독음을 호만절(戶瞞切)과 호단절(胡端切)이라 하고 있기는 한데.... 瞞은 모관절(母官切)로서 당시에는 '뫈'이었고, 端은 도환절(都丸切)로서 당시에는 '돤'이었다. 당장 지금도 중국에서는 端을 '뚜안(duān)'이라 발음하며, 한국에서도 동국정운(1448)에서 '돤'이라는 소릿값이 확인된다. 瞞 역시 중국어의 옛 형태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광동어에서는 '문'(mun⁴)이라고 발음해 桓(wun⁴)과 같은 모음을 쓰고 있다.
한편 우리말의 '한'이 하늘의 준말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말에서 '한'은 넓다 · 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어휘이지, 하늘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어휘다. 따라서 올바르게 선후관계를 따진다면, 차라리 '하늘'이라는 말이 '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 논리관계가 맞는다. 고로 '한'이라는 음소 자체에 하늘이라는 의미가 함축된다고 본 임승국 등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따라서 '한단고기'는 족보에도 없는 이름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여담으로, 환단고기의 황당한 내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환단고기를 가리켜 '황당(荒唐)고기'나 '황당괴기(怪奇)'라는 별칭으로도 부르고는 한다. 그건 또 무슨 고기인가요 맛있나요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반응이다.
기본적으로 환단고기는, 구한말 계연수(桂延壽)라는 사람이 자신이 수집한 5권의 문헌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한 부가 이유립(李裕岦)의 손에 들어갔고, 이것을 이유립이 다시 찍어내어 출판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설정에 따라 저마다 범주나 지향이 다른 5권의 문헌이 제각기 따로 존재하다 보니, 비교해 보았을 때 서로 다른 내용도 많고 중복되는 내용도 많다. 그러므로 정작 그 흩어진 내용이 통합적으로 파악되기가 무척 어렵다.
어쨌든 내용은 아래 분석에서 차차 정리하기로 하고, 환단고기의 서문에 해당하는 '범례'에서 언급되는 5권의 문헌은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
삼성기(三聖記) / 안함로(安含老) 찬
삼성기 전 상편(全上篇)
계연수 본인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오던 문헌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간단하게 쓰인 바쁜 사람들을 위한 환단고기. 때문에 총 704자로 가장 적은 분량이다. 그렇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신화적인 원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문헌 자체로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파악되기 어렵다. 다만 문제는 문헌의 이름이 분명히 '삼성기'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환인, 환웅, 단군을 넘어서 해모수와 고주몽까지 거론되는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오성기'면 모를까. 사실 삼국유사의 고구려 조에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를 가까이하여 주몽을 낳았다는 기록의 주석으로, 단군 역시 하백의 딸 유화를 가까이하여 부루를 낳았다는 말이 쓰여 있긴 하다. 이에 따르면 주몽과 부루는 씨 다른 형제가 된다.
삼성기에 해모수와 주몽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이런 식으로 단군과 엮여 있는 점을 반영하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삼성기(三聖記) / 원동중(元董仲) 찬
삼성기 전 하편(全下篇)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黙)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체로 위의 삼성기 상편과 같지만, 지적된 해모수와 고주몽의 이야기가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를 편집하는 김에 단군까지 덩달아 편집되어서 '이성기'면 모를까 여전히 '삼성기'는 아니다. 대신에 인류의 탄생부터 중국 신화의 신화소들이 대폭 수용되어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졌는데, 이것이 중요한 연유는 환국의 초현실적인 강역이 바로 여기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 1,214자로 오히려 상편보다 분량이 많다. 부록으로 역대 환웅들을 나열한 신시역대기는 총 424자다.
단군세기(檀君世紀) / 행촌 이암(杏村 李嵒) 찬
단군세기 서
단군세기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黙)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조선의 역대 단군에 대한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단기고사 및 규원사화와 같이 47대 단군들의 연대기를 전하는 내용이지만, 이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정작 연대부터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같은 단군 47대를 두고 환단고기는 BCE 2333~BCE 238(2096년간), 단기고사는 BCE 2512~BCE 416(2096년간), 규원사화는 BCE 2333~BCE 1128(1205년간)를 단군조선의 존속 연대로 제시한다. 이 저자는 규원사화를 위서라 주장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대 단군들을 일일이 적어넣다 보니 분량은 많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풍부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37대 단군부터 43대 단군까지는 근 200년간 주욱 '즉위했다'와 '죽었다'가 기록의 전부인데, 자료가 적기로 소문난 삼국사기 백제본기도 이 정도는 아니다.
북부여기(北夫餘紀) /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북부여기 상
북부여기 하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삭주의 진사 이형식(李亨栻)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단군이 나라를 해산한 뒤, 해모수 이래 북부여와 가섭원부여에 대한 내용. 환단고기의 설정에서는 기자조선이니 위만조선이 없고, 단군조선이 공화정치를 거쳐 그대로 북부여로 넘어갔다가 다시 정통이 고구려에 계승된 것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지만 환빠들 사이에서 취급은 그냥 쩌리다.
이전까지만 해도 심심하면 중국을 쥐어패고 다니던 조선이, 이제는 위만 하나도 처리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서 환빠들이 이것을 믿는 이유가 나온다.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태백일사 목록(目錄)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국본기(桓國本紀)
신시본기(神市本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태백일사 발
해학 이기(李沂)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환인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이르는 통사적 성격을 띤다. 그런데 이 태백일사 최대의 미스터리는 단연 삼한관경본기로, 엄연히 기전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본기면 본기지, 본기 안에 세가가 들어있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삼한본기라면서 정작 진한본기는 어디로 실종되어서, 이건 뭐 기전체도 아니고 편년체도 아닌 구성이다... 또한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수록되어 있어 환단고기의 종교경전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환단고기는 순수한문으로 쓰여져 있었기에, 정작 이유립이 1979년에 처음 출간하였을 때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가 지금보다 비교적 한문해득력이 있던 시대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국한문혼용 기반 사회였다.
때문에 환단고기가 처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환단고기를 일본어로 역주한 가지마 노보루(鹿島昇)의 책을 임승국(林承國)이 다시 역수입해 출간한 시점이었다. 임승국이 '한단고기'를 출간한 1986년 이래 여기에 각종 번역과 해석을 덧붙인 수십 종의 상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는데, 나중에는 아예 한문으로 된 원판은 슬그머니 빠지고 머리속망상만 난무하는 이름만 '환단고기'인 환단고기 책도 나왔다.
김은수본(가나출판사 1985)
임승국보다도 앞선 최초의 환단고기 국역본이라는 데 의의가 있는 책.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래도 교보문고 중고시장에 다수 떠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래도 출간 당시에 제법 팔려나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1986년 6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 "단군神話 바람"에 의하면 당시 인기몰이를 하던 국뽕소설 '단'으로 이미 이런 게 팔릴 밑밥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해당 도서를 낸 가나출판사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든 곳과 동일한 회사다.
임승국본(정신세계사, 1986)
임승국이 번역한 판본. 헌데 우습게도 정작 임승국은 고전 한문을 읽고 해석하고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일본의 유사역사학자 가지마 노보루가 일본어로 환단고기를 역주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즉 이중번역이라는 말. 이 책이 나왔을 무렵 이미 사회인인 1950년대생부터 아직 십대던 1970년대생까지, 지금의 유력 또는 중견 정치가, 군인부터 일반인까지 환단고기라 하면 일단 이 책으로 접한 사람이 많다. 1980~1990년대 대학가에 불던 민족종교와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타고 꽤 퍼진 책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가지마 노보루가 쓴 'ニキハヤヒのモデル(니기하야히의 모델)'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니기하야히노모데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거나, '外蒙古喀爾喀界內(외몽고 할하 경계 안)'이라는 말을 잘못 끊어서 '고객이객계(古喀爾喀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고려 후기의 문신 정지상에 대한 서술에 고려 중기에 김부식에게 살해된 정지상에 대해 주를 다는 등 번역조차 막장이다. 안 그래도 정신세계사는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같은 환빠계 신비주의 문서나 오쇼 라즈니쉬 같은 뉴에이지 신비주의 계통의 도서를 주로 취급하던 출판사다.
김낙천본(고려가, 1987)
역사스페셜에 공개된 바에 의하면, 이유립 자신도 환단고기에 현토와 평주를 달아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유립이 죽기 직전까지 참여했고, 그의 사후 고려가 김낙천 사장에 의해 발간되었다는 '대배달민족사'에 반영되었으리라 추정된다. 환단고기는 '대배달민족사'의 제1권 5장에 수록되어 있다. 문제는 이를 1,500질 찍어냈다가 별로 팔리지 않았고, 발행처였던 고려가는 1990년에 고려원미디어로 바꾸어 잔존하다가 1997년에 모기업인 고려원이 망하면서 같이 해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몇년 전에 창고가 침수되어 재고는 전량 폐기. 이에 따라 이유립 본을 시중에서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2014년에 한배달에서 다시 찍어 보급한다고 했으나 어떻게 되었는지는 불명.
전형배본(코리언북스, 1998)
단학회 연구부에서 번역한 판본으로, 창해출판사의 전형배 사장에 의해 출간되었다. 전형배는 위의 김낙천과 함께 이유립의 직속 제자였으니 그 내용은 김낙천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낙천본의 비극적인 운명과 달리 이 판본은 2002년까지 거듭 발간되어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다. 즉,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이유립의 의도와 원전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판본이다. 전체 4권으로 구성되어 1권은 환단고기 본문, 2권은 색인, 3권은 연표, 4권은 지도·도표로 출간할 계획이었으나 어째서인지 4권은 출간되지를 않았다.
이일동본(정신세계사, 1998)
분명 제목은 한단고기가 맞는데, 정작 환단고기 본문은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이일동 본인이 환단고기를 읽고 떠오른 머리 속 망상만 잔뜩 써놓았다고 보면 적절하다. 예를 들면 마한의 월지국(月支國)을 서역의 대월지와도 구분하지 못한다거나, 타클라마칸 사막이 '큰 나라 마한'이라는 말이라고 하는 것 등이다.
실제 '타클라마칸'이란 위구르어로 '산-사막(타클/라마칸)'이라는 뜻으로, 북으로는 천산산맥, 서로는 파미르 고원, 남으로 쿤룬산맥, 동으로 치렌산맥에 둘러싸인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묘사한다. 현지음으로는 타클리마칸(تەكلىماكان)이다.
한재규본(북캠프, 2003)
이일동본이 오로지 망상이라면, 이쪽은 환단고기 본문을 베이스로 망상이 더해진 양상이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패기는 기본이고(1권 140-161), 엔릴이 수메르로 원정 나간 배달국의 장군 '얹날'이라거나,(2권 103) 치우가 그리스까지 밟아 보았다거나(3권 120) 하는 내용은 환단고기 본래의 내용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쪽도 '번역'이라기보다는 자의적인 '해석'에 훨씬 가까운데, 게다가 그걸 만화로 그렸으니 그 파급력이란 어떠할지는 능히 짐작된다.
고동영본(한뿌리, 2005)
고동영이 번역한 판본으로 한뿌리에서 발행되고 있다. 참고로 이 출판사는 규원사화나 신단실기 및 한재규가 그린 만화 환단고기도 출판하고 있는데, 대체로 다른 번역본들과 달리 번역자의 주관적 해석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 특징. 디자인과 크기(약 300쪽)가 심플한 대신 한자로 된 원문은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한문본을 보려면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안경전본(상생출판, 2012)
증산도의 지도자인 안경전이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 증산도 계열 출판사인 상생출판에서 간행하고 있다. 증산도 조직을 이용해 갖은 홍보를 다 하는데, 길거리에서나 서점에서 환단고기 광고 및 홍보물들은 그냥 죄다 이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1,415쪽이라는 몹시 비실용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해제 부분이 반이고 원문 번역이 반이다. 원문 부분에는 한자 하나하나 찾아주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도 등이 많이 들어 있다. 이처럼 물량전에 가까운 대대적인 전략에, 전국의 역덕후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아마추어 역사가들과 종교 단체에서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담은 역사서라고 주장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조작된 위조된 책이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위서란 저자나 저술연대와 같은 서지사항이 위조된 책을 의미하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관자(管子)인데, 이 경우 실존인물인 관자의 이름을 빌려 후대의 사상가들이 공동집필한 것이지만, 워낙 이른 시기(전국~한초)의 것이므로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없는 당대의 사실들이 많이 담겨 있다. 따라서 위서임에도 훌륭한 역사적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환단고기는 여기에 완벽하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 누군가가 고구려사를 기전체로 정리했는데, 제목을 '신집'이라고 하고 필명을 '이문진'이라고 했다고 해보자.
물론 그 안에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서기 600년에 고구려인 이문진이 쓴 신집은 아니다. 그리고 이덕일은 이걸 두고 "이유립이 1970년에 쓰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으니 위서는 아니다"라며 용어를 혼란시키는 전술을 쓰고 있다.
반면 서지사항이 위조되지 않았어도 내용은 지어내거나 왜곡된 가짜 역사일 수 있기에, 진서라고 무조건 추종하거나 위서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각적인 사료 비판을 통해 내용을 검증해야만 한다. 대표적인 게 일본서기(日本書紀)다. 일본서기 자체는 대단히 이른 시기에 집필되었고 서지사항도 명확한 진서지만, 그 안에는 신공황후나 임나일본부설 등 너무나도 분명하게 거짓인 기술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서기를 역사적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역사가에 의한 조심스러운 문헌비평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환단고기에 있는 내용은 인류의 단계적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사적 추세로서 물질문명의 발달, 국가의 형성과 조직 과정을 정면으로 무시한다. 대표적인 게 저 유명한 환국(桓國). 그밖에도 16세기나 20세기가 되어야 나타나는 지명이라든가, 틀린 것으로 드러난 학설들이 버젓이 차용되어 있다. 여기에 기원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종족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까지 들면 한도 끝도 없다. 환단고기는 확실히 가짜 역사다.
게다가 환단고기의 서지사항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독립운동의 당면과제는 배제되고 오히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사상과 흡사한 확장적 · 공격적 민족주의 의식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환단고기를 애국심의 발로로 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실제 역대로 임승국 등 환단고기의 추종자들은 독재정권에 협력을 자청한 이들이었다.
임승국은 "국수주의 독재면 어떠냐 반공만 하면 그만이지"라고 전두환에게 진언했다. 전두환단고기 정말 임승국의 생각대로 한국이 굴러갔다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팔레트 스왑,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처럼 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단군교의 천부경과 대종교의 삼일신고를 무단으로 베껴다가 싣고 있으니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핵심에는 자신의 가문을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선양하려던 이유립의 흑심이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총칭하여 거짓 포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위서로 취급한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12월 7일에 부경대에서 진행된 2018 환단학회추계학술대회에서는 그런 진술이 위증이라는 전 한국신학대학교 김상일 교수의 증언이 있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2004년 인민문화광장에서 열린 단군학회에서 김정배 교수, 윤내현 교수와 본인이 참여한 학술대회에서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인천공항에 내려서 기자들이 몰려오자 김정배 교수와 윤내현 교수는 북한에서 위서로 취급한다고 위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역사박물관에는 환단고기의 연대를 표시해 놓았다고 증언했다. 다만 김정배 교수의 경우 실제로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증언의 진위는 명확하지 않다.
환단고기의 실제 저자가 허술한 이유립이었으니 망정이지, 화랑세기 필사본의 실제 저자로 추정되는 박창화였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유립의 환단고기는 전문가들이 금방 위서로 판정할 정도로 질이 떨어지는 책이지만,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은 현재까지도 진위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따라서 어설픈 이유립이 아니라 치밀한 박창화가 환단고기 같은 가짜 역사책을 썼으면 분명 일시적으로나마 역사학자들 중에서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나왔을 것이니 악영향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국의 도립이나 시립 도서관을 가보면 이 책이 꽂혀 있다. 심지어 몇몇 학교 도서관에도 그것도 종교서적이나 한국소설(811)이 아니라 한국상고사(951.2)로 분류되어 있어서, 이걸 가지고 이용자와 도서관장이 실랑이를 벌인 적까지 있다. 하지만 이는 뭔가 특정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관여했다기보다는, 기증 혹은 구매 신청을 내서 수용한 것. 심한 경우에는 매일마다 동네 도서관에 출퇴근하면서 자신이 기증한 환단고기가 역사 분야에 잘 꽂혀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안 보이면 즉시 컴퓨터로 대출 여부를 확인해서 장기 미반납일 경우에는 1권 더 구입해 두라고 요구하거나 자신이 직접 구매해 기증하기도 한다.
이따금 개념 있는 사서는 매분기 도서 분류 때 한국소설로 밀어 버리기도 하고, 사서는 물론 도서관장까지 합심해서 환단고기를 안 들여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경우 시민의 장서 구입 요구를 무시한다며 사방팔방에 민원이 들어가버린다. 단순히 무관심해서 환단고기를 역사 분야에 두는 경우 말고도, 이렇게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두는 경우도 많다.
사실 도서관의 목적은 발간된 서적을 소장하고 보관하는 것에도 있는 만큼,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것 같은 명백하게 국가가 금지한 서적이 아니고서야 돈이 있고 민원이 있는데도 들여놓지 않을 수는 없다.
중국 바이두 백과에도 해당 문서가 올라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당 문서에서는 "한국의 정통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않지만, 환단고기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대량의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정계 인사, 학자, 유명인들도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일부 환빠" 정도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 역덕들은 한국만 언급되면 "우주 전체가 한국 것이다"라는 비아냥 섞인 드립을 치기도 한다.
2011년에 증산도 교주 안경전이 환단고기를 교리화한 이래, 증산도가 환단고기 전파 활동을 대단히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각 서점마다 양장본을 잔뜩 쌓아놓고, 전국을 돌면서 환단고기 세미나를 벌였다. 기본적으로 이하는 2012~2013년 사이에 증산도에서 환단고기 관련 활동을 어떻게 벌이고 다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증산도 부속 방송인 STB상생방송에서 역사 특강을 한다면서 환단고기 특강을 한다. 사실 상생방송은 2011년 이전부터 이미 사이비 역사학자들을 불러다가 사이비 역사를 마구 뿌리고 다니고 있었던 전력이 있다. 백제가 조신하고 도의적인 문화였다느니, 신라의 탑돌이 문화가 현대의 홍대거리 클럽과 같다느니, 신라의 문화는 모다 백제로부터 배워 간 것이라느니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도 충분히 아스트랄했지만, 2011년 이래로는 엄연히 환단고기라는 텍스트를 얻게 되었다.
사단법인 대한사랑이라는 단체에서 학교를 돌며 참역사를 강의한다. 사단법인 운운하니까 종교단체인 증산도와는 무관한 것 같지만, 속지 말자. 내미는 환단고기 판본이 죄다 증산도 역주본이다. 수많은 환빠 단체 가운데에서도 신교문화 운운하는 건 증산도밖에 없다.
원래 신교(神敎)라는 말은 대종교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다. 대종교의 주장에 따르면 단군이 계시던 상고시대에 우리 민족이 믿던 종교가 바로 '신교'라고 한다. 그러다가 13세기 중반에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되자 신교의 명맥이 끊어졌는데, 구한말에 홍암 나철 선생이 어느 이인으로부터 신교의 맥을 받아 당대에 중광(복구)한 것이 바로 대종교라는 주장.
즉 대종교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통종교인 신교의 후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교'라는 것에 대한 역사적인/고고학적인 증거는 없으며, 단지 대종교의 종교적인 주장이다. 증산도는 대종교의 용어인 신교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되, 신교의 정통맥이 대종교가 아니라 바로 자기네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순회했지만, 최근에는 좀 더 성인층을 대상으로 포항공대나 국회 대회의실 등에서 지방 순회 강연을 벌이는 듯. 참고로 강의는 대충 이렇게 진행된다고 한다. 비단 증산도만이 아니라 단월드 등 다른 곳에서도 통용되는 방법이다.
청중들의 분노를 끌어올린다.
- 요령: 질풍노도의 시기인 학생들은 단순하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비난하자.
- 심화: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일본군의 만행과 같은, 보다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이 경우에는 남한대토벌 작전 당시에 의병을 처형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나, 철로 건설 당시에 철로를 부수려던 사람을 목 매단 사진이나, 하여튼 뭐라도 자극적인 시각자료가 있어야 한다.
2. 그렇게 끌어 올려진 분노를 기성사학계로 돌린다.
- 요령: 일본이 한국의 역사서 20만 권을 수거해서 불태웠다고 자극하라.
- 발전: 식민사관의 거두 이병도가 최태영에게 설득되어 단군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강의하라.
- 세부: 요수난하설을 들먹이며 한사군은 사실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 있었다고 강의하라.
- 결과보고: 학생들이 국사 교과서와 선생님에게 의심을 품는다.
3.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대안이라며 환단고기를 제시한다.
- 요령: KBS 역사스페셜이 1999년에 방영했던 <추적! 환단고기 열풍>에서 환단고기의 내용을 잠시 틀어주도록 하라. 당신이 잠시 쉴 수 있게 된다.
- 주의: 제한된 부분만 틀어주도록 하라. 해당 방영분에는 환단고기를 옹호하는 내용만 있는 게 아니다.
- 발전: 환단고기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로 홍산문명을 들어라. 모든 증거가 단군신화의 웅녀에 꿰어맞춰진다.
4. 우리나라가 세계 문명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 발전: 환국 12국 가운데 수밀이국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메르라고 끼워 맞추라.
- 요령: 지도를 적극 활용하라. 환국의 광활한 영토가 부수적으로 세뇌된다.
5. 우리나라가 대단히 오래된 나라고 큰 나라였다고 세뇌한다.
- 세부: 우리나라가 환국→배달국→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1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라.
- 세부2: 삼한이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 중국, 한반도 세 나라 전체에 걸쳐 있었다고 하라.
- 발전: 삼한이나 대한민국의 '한'이라는 말이 크다,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에게 내재한 광명, 또는 광명이 깃든 신성한 존재로서의 인간 등을 의미하는데, 사람이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면 무병장수하게 된다고 꼬드겨라. 뭐가 뭔 소리인지 몰라도 '한'이 뭔가 대단한 거라고 세뇌되기엔 충분하다.
- 결과보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나라였으며, 이것이 진짜 역사라고 세뇌된다.
환단고기 독후감 대회도 벌이는 듯하다. 참고로 대회에서 주는 상마다 다 하나씩 환단고기가 있다. 또 인소닷에서도 이걸 독후감 대회로 걸어 놓았던 적이 있다. 충북 청주시의 한 고등학교에 걸려 있던 이 독후감대회 팜플렛 옆에 누군가가 이 항목을 인쇄해 붙여 놓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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