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68년 8월 18일
학력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
수상 2000년 SBS 연기대상 빅스타상
대한민국의 배우, MC.
1990년 대 톱스타로 인기는 2000년 초반까지 계속됐다.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대한항공에서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며 '스마일 퀸'에도 뽑히는 등 미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2년 미스코리아 참가를 계기로 승무원직을 그만두고, 대회에서 '미'에 뽑혀 유명세를 타며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DSP 이호연 사장이 발굴했다고 한다.
데뷔 당시 미스코리아 출신답게 세련된 용모와 말솜씨로 인기를 얻었다.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1990년대 패션 아이콘으로 불렸으며, 그녀가 입고 나온 스타일은 길거리 보세까지 모두 품절 될 정도였다고. 드라마 '첫사랑'을 비롯 각종 드라마의 주연,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 MC까지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지금이야 시대가 한참 지나서 그렇지, 1990년대 그녀의 인기는 김희선, 황신혜 등의 당대 탑스타들이 전혀 부럽지 않은 인지도와 워너비 스타로서의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1990년대 탑스타들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던 사람이 이승연이었다.
당시에는 이홍렬쇼, 서세원쇼처럼 진행자의 이름을 딴 토크쇼들이 크게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는데, 주로 남성위주의 토크쇼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시절에 여배우가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내 건 토크쇼를 인기리에 진행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여러가지 사건들 때문에 이미지가 나쁘지만, 당시에는 혼자서 토크쇼도 능수능란하게 진행하고, 스타일도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연예인이었다.
게다가 데뷔 전 스튜어디스로 일했던 경력도 있어서 발음, 발성이나 예능에서 대처능력이 비슷한 시기의 심은하, 고소영, 신은경 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능숙하고 압도적이었다.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가 여러 사건으로 종영되고 바로 이어서 '김혜수 플러스 유'가 방영됐는데, 진행실력이 이승연과 비교되면서 인터넷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김혜수도 이승연 못지않은 진행 경력을 자랑하는데도 말이다.
필모그래피만 봐도 첫사랑이라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 외에도 사랑을 그대 품안에, 모래시계와 같은 굵직한 드라마에 나왔으며, 모두 한국 드라마사에서 뺄 수가 없는 기념비같은 작품들이다.
당시 동료 연기자였던 김희선, 심은하 등이 활동 초창기에 연기력 논란으로 곤혹을 치를 때에도 오히려 준수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나름 믿고보는 배우 타이틀도 지니고 있었다.
당시에도 많은 워너비 스타들이 있었지만, 이승연은 특히나 패션과 스타일 등에서 여성들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같은 여자들의 지지가 더 많았던 대표적인 연예인. 당시 길거리 보세가게에서는 그녀가 드라마에서 들고 나온 가방, 옷등의 카피품들이 '이승연 OOO' 식의 이름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으며, 그녀가 조연으로 나오던 드라마 조차도 핫한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었었다.
소위 1990년대식 메이크업으로 인식되는 브라운 립스틱, 염색한 보브숏컷, 철사 헤어밴드 등은 모두 그녀의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들.
현재 국내 최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은 일을 막 시작했을때 당시 톱스타였던 이승연을 담당하게 되어 매우 설렜으나,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잘린 것에 충격을 받아 이승연에게 인정받기 위해 개인 포트폴리오를 제작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터뷰 기사
이렇듯 1990년대 연예계는 그녀를 빼놓고 말하면 이야기가 안 될 정도의 충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래 후술된 운전면허 사건, 위안부 화보 사건 연타로 모든 커리어를 한 방에 날려먹었다. 이후로 당시 활동하던 여자 연예인들과의 경쟁 라인에서 완전히 밀려났으며, 지금의 이미지와 입지로 전락했다.
사실 위안부 사건이 너무 역대급이라 상대적으로 묻혀서 그렇지, 애초에 이승연의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운전면허 사건 때문이었다. 면허 사건 이후로 공중파 출연을 거부당했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누드 화보를 선택했는데 그게 하필 위안부를 소재로 한 막장 행보인지라...... 결국 스스로의 연예계 생명을 완전히 아작내는 꼴이 되었다.
위안부 사건 이후 한동안 방송에 나올 수가 없었고, 복귀 이야기만 나와도 여론이 급격히 나빠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 복귀를 시도했지만,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 드라마만 나온 뒤 다시 종적을 감췄다.
설상가상으로 프로포폴 사건 때문에 한동안 지상파 출연이 막힌 후에는 자연히 JTBC나 MBN같은 종편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했다.
대표적으로 오르내리는 것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은데, 일단 1998년에 불법 운전면허 취득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불법 교습 따위가 아니라 간 크게도 운전면허학원의 모델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대가로 도로주행 대리시험과 학과성적 조작을 통해 말 그대로 운전면허를 불법으로 취득했던 것.
이후 징역 8개월, 집유 1년, 사회봉사 80시간 명령을 선고받았다. 약 2년 동안 활동을 못하다가 재기하는 듯했으나, 이 사건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으니.
'이승연과 100인의 여자'라는 토크쇼와 드라마 대풍수에 출연하는 등 슬슬 활동 영역을 넓히던 와중에 2013년 2월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검찰에 조사를 받았고, 3월에 불구속 기소되면서 다시 한 번 이미지에 치명타를 맞았다. 100인의 여자도 방송 및 제작이 중단된 상황. 대출 광고는 배종옥이 출연하는 걸로 바뀌었다.
2013년 11월 25일에 열린 최종 공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동년 12월 9일 KBS와 MBC에서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
2014년에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캐스팅됐다.
2016년 7월 10일 TV조선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근황과 심정을 공개하였다.
2016년 8월 4일 KBS에서 출연금지가 풀렸다. 이에 대다수 시청자들은 KBS가 막장으로 간다면서 까고 있다.
2017년에 MBC에서 출연정지가 해제됐으며, 2018년 3월 25일에 방송을 시작한 주말 드라마 "부잣집 아들"의 출연으로 복귀했지만 그 유명한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영 내내 시청률 부진에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편이다.
그나마 2019년에 출연한 KBS 일일 드라마 왼손잡이 아내의 경우에는 두자릿수 시청률을 보이며 순항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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